1991년 보염패 긴차(생차)
중국의 보이차에는 시대별로 독특한 이름이 있습니다만 그 형태에 따라서도 여러 이름이 있습니다.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것이 원반처럼 생긴 병차(餠茶)인데, 떡처럼 둥글다 하여 떡 병(餠) 자를 사용합니다. 그리고 벽돌처럼 직육면체로 생긴 것을 전차(塼茶, 혹은 磚茶)라 하고, 정육면체의 모양을 방차(方茶)라고 합니다. 또 동전처럼 생긴 전차(錢茶)도 있습니다. 병차와 비슷한데 둥글게 만든 차는 단차(團茶)라고 합니다.
물론 보이차를 이러한 여러 형태로 만들기 위해서는 단단하게 눌러 뭉쳐야 하는데, 이를 긴압(緊壓)이라 하고 통칭하여 긴압차라고 합니다.
타차와 긴차
긴압차 중에 타차(沱茶)라는 것이 있는데 이는 사발 또는 잔처럼 둥근 모양으로 속이 움푹 파이게 긴압된 차를 말합니다. 타차는 중국 역사상 가장 오래된 형태인 긴압차 중 하나입니다. 물을 의미하는 타(沱)라는 글자를 사용한 것은 아마 이 차가 물을 담을 수 있는 사발이나 잔의 형태로 만들어졌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것이 전형적인 타차의 모습
겸리의 타차들
타차 중에 긴차(緊茶)라는 것이 있는데, 긴압차와는 다릅니다. 타차를 만들 때 위의 사진과 같은 모양에 손잡이 같은 것을 붙여서 전체적인 모습이 버섯 모양을 연상하게 하였는데, 이러한 모습의 차를 긴차라고 합니다.
버섯 모습을 본뜬 긴차
위에서 긴압차와 긴차는 서로 다른 차라고 하였지만 사실 의미는 동일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긴압차가 차를 어떤 모양이든 긴압하여 만든 차의 총칭이라고 한다면, 긴차는 이러한 긴압차가 특정한 모양으로 만들어진 후 그것이 어느 민족에게 특별히 소비되어 그들에 의해 불린 이름이기 때문입니다.
그 민족이 바로 중국의 소수민족인 장족(藏族)입니다. 중국 여러 곳에도 장족이 있지만 티베트 인구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티베트족도 사실은 장족입니다. 이 장족의 필수품으로서 그들의 특별한 수요에 따라 만들어진 차가 바로 긴차입니다.
그들은 처음에는 여러 형태의 긴압차를 소비하였으나 1912년 이후에 긴압차의 형태를 변경하였는데, 그것이 바로 이 버섯과 같은 모양의 차였고, 이 차를 장족들이 긴차라고 부르기 시작하면서 비로소 긴차가 역사에 등장하였던 것입니다.
긴차 역시 병차와 마찬가지로 7 개가 한 통으로 구성되어 대나무 잎으로 포장되었습니다.
대나무 잎으로 포장된 긴차.
애초에 차를 이러한 모양으로 만든 것은 미적(美的) 차원보다는 필요에 의해서였습니다.
운남에서 장족이 사는 티베트 등지로 차를 운반하기 위해서는 오랜 기간이 필요한데, 이때 차에 곰팡이가 피는 것이 늘 문제였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존에 단차 형태로 제공되던 차를 개량하여 차와 차 사이에 공간을 둔 버섯 형태로 만들었습니다.
이렇게 형태에 변경을 가하자 차 사이에 틈이 생기게 되어 원거리 운송에도 곰팡이 피는 일이 없어졌고, 찻잎이 머금고 있는 수분을 잘 조절할 수 있었으므로 숙성도 잘 되어, 곧바로 긴차는 장족에게 매우 인기가 좋은 형태의 차로 되었습니다. 필요가 발명을 낳은 것이 아니라 형태를 낳은 것입니다.
이것은 현대에도 장기간 차를 보존하는 데에는 이러한 형태가 더욱 유용함을 의미합니다. 실제로 이렇게 장기간 보관된 긴차의 맛은 그 깊이가 더할 나위 없이 깊었습니다.
보염패 긴차
대나무 잎 포장 안의 보염패긴차
긴차가 '보염패(靌焰牌)' 라는 상표명으로 처음 생산된 것은 1942년입니다. 하관차창(下關茶廠)에서 보염패를 상표로 등록하고 보염패 긴차를 생산한 것입니다. '보염'이라는 것은 '진귀한 보석으로부터 뿜어져 나오는 광휘' 정도의 뜻입니다. 이 단어는 '부처님의 광명이 널리 세계를 비춘다'라는 불교의 '불광보조(佛光普照)'라는 의미로 만들어졌습니다.
1949년 중국의 공산화 이후 모든 차창들이 국영화되었을 때 정부는 각 차창에 과거 각각의 상표를 사용하였던 대신 보염패를 사용하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각 차창마다 보염패 내비의 문장을 달리하여 구별할 수 있도록 하습니다.
80년대에 사용하던 보염패 내비
그러나 1966년 중국에서 문화대혁명의 시작과 동시에 불교적 의미를 가지고 있는 보염패 상표가 봉건주의적 색채를 지니고 있다는 이유로 폐기되었고, 대신 '민족단결패'라는 상표로 대체되었습니다.
겸리의 '금첨'에 있던 80년대의 민족단결패.
상표 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 시기는 사회의 전 분야에서 홍위병에 의해 공산주의적 광풍이 휘몰아치던 시기였습니다. 중국 내에서는 차가 부르주아적 식품으로 불살라졌을 뿐 아니라 차를 보유하고만 있어도 반동으로 몰렸습니다. 그나마 티베트 등 변방으로 나가던 차들의 유통마저 끊기지 않은 것이 다행인 시기였습니다.
그런데 이 시기 긴차의 생산도 중단되는데, 그 이유는 이전부터 제기되어 온 긴차의 포장과 운송 상의 문제였습니다. 즉 차 사이의 공간이 넓어짐에 따라 차의 포장이 단차 보다 어렵고, 부피를 더 많이 차지하게 됨에 따라 더 적은 양의 긴차를 운송할 수밖에 없었던 것인데 이러한 점이 비판받게 되었던 것입니다.
또한 긴차의 손잡이 부분은 기계로 만들지 않고 수작업으로 일일이 비틀어서 만드는데, 매우 시간이 소요되는 등 비효율적이었습니다.
결국 1967년에는 버섯형 긴차의 생산이 중단되고 기계로 대량생산하기 쉬운 벽돌 모양의 전차(磚茶)로 생산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제다 방법에 있어서도 약간의 변화를 가져옵니다. 질보다는 효율성을 더 중시하던 시기였던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은 문화대혁명이 끝난 이후까지도 계속되어 1986년까지 지속됩니다. 운남의 고차수림을 비효율적이라 여겨 다 갈아 엎어 버리고, 그 자리에 옥수수나 대지차를 심어 대량생산하던 시기와도 겹칩니다.
반선긴차
1986년에 긴차의 역사에서 주목할 만한 사건이 발생합니다. 바로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인 제10대 판첸(班禪)라마가 하관 차창을 방문하여 장족들이 오랫동안 마시던 버섯 형태의 긴차를 다시 생산하여 줄 것을 정식으로 요청합니다.
차의 형태와 제다법이 바뀐 탓으로 티베트인들에게 익숙해져 있던, 옛날부터 긴차가 가지고 있던 ‘기골(氣骨)이 있다’라고 표현하는 강한 맛은 없어지고 부드럽고 온화한 맛이 되었는데, 판첸라마는 바로 옛 맛을 좋아하는 티베트 등 장족 사람들을 위해 특별히 자신의 자금으로 긴차 5,000kg을 주문하며 긴차의 재생산을 요청하였던 것입니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티베트에서 가까운 하관차창(운남성 대리大理에 위치)을 긴차 전담 생산 공장으로 지정하여 생산케 하였는데 그 명칭은 '하관보염패긴차'라 하였고, 판첸라마의 이름을 넣어 반선긴차(班禪緊茶)라고도 합니다.
보염패 상표가 훼손되고 패(牌) 자만 보임.
반선긴차는 당시 판첸 라마가 사비를 들여 특별 주문하여 약 20년 만에 다시 생산하게 된 것으로, 중국에서 볼모로 있으며 티베트의 자유와 독립을 위한 상징적 존재인 판첸라마가 자국민을 생각하는 마음으로 직접 주문한 차여서 매우 유명해지게 되었습니다.
물론 당시 판첸 라마에게 특별히 만들어 선물로 준 최고급 긴차만 반선긴차로 보는 견해도 있으나, 판첸 라마에 의해 다시 생산하게 된 이러한 형태의 긴차를 통상 반선긴차로 부릅니다
현재까지도 하관 차창에서 생산하고 있는 보염패 반선긴차는 변경지역인 티베트나 장족 생활 지역에서 장족들이 그들의 생활차로서 음용하고 있는 귀중한 차입니다.
* 1966년 폐지되었던 '보염패'의 상표도 1990년 11월에 정식으로 다시 등록되었는데, 겸리의 긴차는 보염패 상표 재등록 후 바로 생산된 것으로 1991년 춘차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처음 포장을 해체할 때의 모습. 병차와 마찬가지로 7개가 한 통으로 구성되어 대나무잎으로 포장.
제품안내
제품명 | 1991년 보염패 반선긴차 |
원산지 | 중국 운남 |
용량/크기 | 약 200g |
재질 | 보이찻잎 100% |
구성 | 차와 포장 |
수입판매원 | (주)규보(차향이 머무는 뜨락) |
소비자 상담 연락처 | 010-6382-707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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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보염패 긴차(생차)
중국의 보이차에는 시대별로 독특한 이름이 있습니다만 그 형태에 따라서도 여러 이름이 있습니다.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것이 원반처럼 생긴 병차(餠茶)인데, 떡처럼 둥글다 하여 떡 병(餠) 자를 사용합니다. 그리고 벽돌처럼 직육면체로 생긴 것을 전차(塼茶, 혹은 磚茶)라 하고, 정육면체의 모양을 방차(方茶)라고 합니다. 또 동전처럼 생긴 전차(錢茶)도 있습니다. 병차와 비슷한데 둥글게 만든 차는 단차(團茶)라고 합니다.
물론 보이차를 이러한 여러 형태로 만들기 위해서는 단단하게 눌러 뭉쳐야 하는데, 이를 긴압(緊壓)이라 하고 통칭하여 긴압차라고 합니다.
타차와 긴차
긴압차 중에 타차(沱茶)라는 것이 있는데 이는 사발 또는 잔처럼 둥근 모양으로 속이 움푹 파이게 긴압된 차를 말합니다. 타차는 중국 역사상 가장 오래된 형태인 긴압차 중 하나입니다. 물을 의미하는 타(沱)라는 글자를 사용한 것은 아마 이 차가 물을 담을 수 있는 사발이나 잔의 형태로 만들어졌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것이 전형적인 타차의 모습
겸리의 타차들
타차 중에 긴차(緊茶)라는 것이 있는데, 긴압차와는 다릅니다. 타차를 만들 때 위의 사진과 같은 모양에 손잡이 같은 것을 붙여서 전체적인 모습이 버섯 모양을 연상하게 하였는데, 이러한 모습의 차를 긴차라고 합니다.
버섯 모습을 본뜬 긴차
위에서 긴압차와 긴차는 서로 다른 차라고 하였지만 사실 의미는 동일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긴압차가 차를 어떤 모양이든 긴압하여 만든 차의 총칭이라고 한다면, 긴차는 이러한 긴압차가 특정한 모양으로 만들어진 후 그것이 어느 민족에게 특별히 소비되어 그들에 의해 불린 이름이기 때문입니다.
그 민족이 바로 중국의 소수민족인 장족(藏族)입니다. 중국 여러 곳에도 장족이 있지만 티베트 인구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티베트족도 사실은 장족입니다. 이 장족의 필수품으로서 그들의 특별한 수요에 따라 만들어진 차가 바로 긴차입니다.
그들은 처음에는 여러 형태의 긴압차를 소비하였으나 1912년 이후에 긴압차의 형태를 변경하였는데, 그것이 바로 이 버섯과 같은 모양의 차였고, 이 차를 장족들이 긴차라고 부르기 시작하면서 비로소 긴차가 역사에 등장하였던 것입니다.
긴차 역시 병차와 마찬가지로 7 개가 한 통으로 구성되어 대나무 잎으로 포장되었습니다.
대나무 잎으로 포장된 긴차.
애초에 차를 이러한 모양으로 만든 것은 미적(美的) 차원보다는 필요에 의해서였습니다.
운남에서 장족이 사는 티베트 등지로 차를 운반하기 위해서는 오랜 기간이 필요한데, 이때 차에 곰팡이가 피는 것이 늘 문제였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존에 단차 형태로 제공되던 차를 개량하여 차와 차 사이에 공간을 둔 버섯 형태로 만들었습니다.
이렇게 형태에 변경을 가하자 차 사이에 틈이 생기게 되어 원거리 운송에도 곰팡이 피는 일이 없어졌고, 찻잎이 머금고 있는 수분을 잘 조절할 수 있었으므로 숙성도 잘 되어, 곧바로 긴차는 장족에게 매우 인기가 좋은 형태의 차로 되었습니다. 필요가 발명을 낳은 것이 아니라 형태를 낳은 것입니다.
이것은 현대에도 장기간 차를 보존하는 데에는 이러한 형태가 더욱 유용함을 의미합니다. 실제로 이렇게 장기간 보관된 긴차의 맛은 그 깊이가 더할 나위 없이 깊었습니다.
보염패 긴차
대나무 잎 포장 안의 보염패긴차
긴차가 '보염패(靌焰牌)' 라는 상표명으로 처음 생산된 것은 1942년입니다. 하관차창(下關茶廠)에서 보염패를 상표로 등록하고 보염패 긴차를 생산한 것입니다. '보염'이라는 것은 '진귀한 보석으로부터 뿜어져 나오는 광휘' 정도의 뜻입니다. 이 단어는 '부처님의 광명이 널리 세계를 비춘다'라는 불교의 '불광보조(佛光普照)'라는 의미로 만들어졌습니다.
1949년 중국의 공산화 이후 모든 차창들이 국영화되었을 때 정부는 각 차창에 과거 각각의 상표를 사용하였던 대신 보염패를 사용하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각 차창마다 보염패 내비의 문장을 달리하여 구별할 수 있도록 하습니다.
80년대에 사용하던 보염패 내비
그러나 1966년 중국에서 문화대혁명의 시작과 동시에 불교적 의미를 가지고 있는 보염패 상표가 봉건주의적 색채를 지니고 있다는 이유로 폐기되었고, 대신 '민족단결패'라는 상표로 대체되었습니다.
겸리의 '금첨'에 있던 80년대의 민족단결패.
상표 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 시기는 사회의 전 분야에서 홍위병에 의해 공산주의적 광풍이 휘몰아치던 시기였습니다. 중국 내에서는 차가 부르주아적 식품으로 불살라졌을 뿐 아니라 차를 보유하고만 있어도 반동으로 몰렸습니다. 그나마 티베트 등 변방으로 나가던 차들의 유통마저 끊기지 않은 것이 다행인 시기였습니다.
그런데 이 시기 긴차의 생산도 중단되는데, 그 이유는 이전부터 제기되어 온 긴차의 포장과 운송 상의 문제였습니다. 즉 차 사이의 공간이 넓어짐에 따라 차의 포장이 단차 보다 어렵고, 부피를 더 많이 차지하게 됨에 따라 더 적은 양의 긴차를 운송할 수밖에 없었던 것인데 이러한 점이 비판받게 되었던 것입니다.
또한 긴차의 손잡이 부분은 기계로 만들지 않고 수작업으로 일일이 비틀어서 만드는데, 매우 시간이 소요되는 등 비효율적이었습니다.
결국 1967년에는 버섯형 긴차의 생산이 중단되고 기계로 대량생산하기 쉬운 벽돌 모양의 전차(磚茶)로 생산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제다 방법에 있어서도 약간의 변화를 가져옵니다. 질보다는 효율성을 더 중시하던 시기였던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은 문화대혁명이 끝난 이후까지도 계속되어 1986년까지 지속됩니다. 운남의 고차수림을 비효율적이라 여겨 다 갈아 엎어 버리고, 그 자리에 옥수수나 대지차를 심어 대량생산하던 시기와도 겹칩니다.
반선긴차
1986년에 긴차의 역사에서 주목할 만한 사건이 발생합니다. 바로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인 제10대 판첸(班禪)라마가 하관 차창을 방문하여 장족들이 오랫동안 마시던 버섯 형태의 긴차를 다시 생산하여 줄 것을 정식으로 요청합니다.
차의 형태와 제다법이 바뀐 탓으로 티베트인들에게 익숙해져 있던, 옛날부터 긴차가 가지고 있던 ‘기골(氣骨)이 있다’라고 표현하는 강한 맛은 없어지고 부드럽고 온화한 맛이 되었는데, 판첸라마는 바로 옛 맛을 좋아하는 티베트 등 장족 사람들을 위해 특별히 자신의 자금으로 긴차 5,000kg을 주문하며 긴차의 재생산을 요청하였던 것입니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티베트에서 가까운 하관차창(운남성 대리大理에 위치)을 긴차 전담 생산 공장으로 지정하여 생산케 하였는데 그 명칭은 '하관보염패긴차'라 하였고, 판첸라마의 이름을 넣어 반선긴차(班禪緊茶)라고도 합니다.
보염패 상표가 훼손되고 패(牌) 자만 보임.
반선긴차는 당시 판첸 라마가 사비를 들여 특별 주문하여 약 20년 만에 다시 생산하게 된 것으로, 중국에서 볼모로 있으며 티베트의 자유와 독립을 위한 상징적 존재인 판첸라마가 자국민을 생각하는 마음으로 직접 주문한 차여서 매우 유명해지게 되었습니다.
물론 당시 판첸 라마에게 특별히 만들어 선물로 준 최고급 긴차만 반선긴차로 보는 견해도 있으나, 판첸 라마에 의해 다시 생산하게 된 이러한 형태의 긴차를 통상 반선긴차로 부릅니다
현재까지도 하관 차창에서 생산하고 있는 보염패 반선긴차는 변경지역인 티베트나 장족 생활 지역에서 장족들이 그들의 생활차로서 음용하고 있는 귀중한 차입니다.
* 1966년 폐지되었던 '보염패'의 상표도 1990년 11월에 정식으로 다시 등록되었는데, 겸리의 긴차는 보염패 상표 재등록 후 바로 생산된 것으로 1991년 춘차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처음 포장을 해체할 때의 모습. 병차와 마찬가지로 7개가 한 통으로 구성되어 대나무잎으로 포장.
제품안내
제품명 | 1991년 보염패 반선긴차 |
원산지 | 중국 운남 |
용량/크기 | 약 200g |
재질 | 보이찻잎 100% |
구성 | 차와 포장 |
수입판매원 | (주)규보(차향이 머무는 뜨락) |
소비자 상담 연락처 | 010-6382-707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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